(25)섬진강 물길 따라// 그저 속없이 찾아간 사람
식당으로 가는 길의 한 모퉁이에 갱조개의 패총더미를 보았다. 수북이 쌓인 그 더미를 보니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갔구나 싶어졌다. 갱조개는 경상도에서 쓰는 재첩의 다른 말이다. 저 무덤. 아, 저렇게 죽어 나자빠진 생물의 무리를 보니 안쓰러워졌다. 예고 없이 태어났던 우리들처럼 저들도 생존을 위해 세상에 존재했거늘, 우리들이 저렇게 변형시켰다니. 저 많은 재첩 속살들은 인간들의 널따란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거다.
“재첩! 너는 내 입 속으로 들어간다. 꿀딱.”
그렇게 순식간에, 그 긴 터널로 들어갔겠지 싶어진다. 그 존재의 흔적이듯 저 더미는 저렇게 나뒹굴어졌고, 선장님은 의기양양하게 또 다시 저들 종족을 찾아 배의 시동을 걸었을 것이다. 마치 구석기 시대의 패총더미라도 보듯 신기하게 들여다보다가 식당에 들어서다.
그럼 오늘 식단은 어떨까? 방 안에는 이미 밥상이 진열되어 있다. 밥상에는 콩나물무침, 호박나물, 튀김, 배추김치, 미역쪼가리, 전 부침, 멸치볶음, 무김치, 김, 들깻잎 장아찌, 김무침, 묵무침이 여느 식당이나 다름없는 전형적인 메뉴이고.
또한, 전 부침과 튀김을 빼고는 평소 일반 가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별반 다름없는 반찬이지만 조금 가짓수가 많을 뿐이다. 조금 있자니, 재첩모둠무침이 제공되었다. 기다리던 요리다. 이것을 안주삼아 이곳 하동 악양양조장의 ‘정감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니, 그 텁텁함이 대롱같은 내 목구멍으로 쭉 빨려 들어간다. 상쾌함이 창자 속을 후벼대 그런대로 여독이 풀린다. 무침에 이어서 쌀밥과 재첩국이 제공되었다.
단연 오늘의 먹거리는 이 재첩모둠무침과 재첩국이었는데.
“재첩무침 더 주세요.”
곁에서 요청하니, 다른 것은 무상으로 추가 제공하지만 이것은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친다. 비싼 모양이다. 이곳 특산물이니 다른 곳에서는 귀하디귀한 것들이라 음미하며 맛을 찾다. 씹혀서 나오는 진액이 이색적인 씹힘이다. 이런 때는 어떻게 표현하지? 갑자기 웃음이 나온다. 어떻게 표현해야 온당할까?
오래 전에 여름 휴가차 지리산에 들렀다가 구례 대통밥집에서 인터뷰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친구 부부와 같이 지리산 성삼재를 넘어오다가 화엄사계곡의 어느 한식집 대통밥을 먹자고 들렸는데. 우연찮게 모 TV에서 촬영차 나왔다가 내게 인터뷰를 청했다.
“대통밥맛이 어떠십니까?”
대통에서 밥을 꺼내 한 입 넣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취재기자가 마이크를 내 턱 밑까지 불쑥 내밀었다. 지방지국 기자다. 이어서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촬영기사도 바로 서치라이트를 내게 훤히 비췄다. 방안의 모든 시선들이 일제히 우리 일행에게 쏠렸고. 이거 뭐야? 내 돈 내고 내가 먹겠다는데 예고 없이 이런 방해를 해. 참 더러웠다. 세상에 이런 무례가 어디 있나? 이제 겨우 한 입 들어가려는데, 이건 분명 반칙이다.
그렇다고 카메라 앞에서 항의하며 표정을 일그러뜨릴 수만은 없었다. 이런 때 남의 눈치도 봐야 하는 게 세상 요령 아니던가? 개의치 않고 활짝 웃어젖히며,
“지리산 영롱한 안개와, 맑은 계곡물을 먹고 자란 들꽃을 먹는 듯 대통 밥이 맛있습니다. 꼭들 와서 잡숴 보세요.”
하하하하. 그 후 TV에서 방영된 이 프로를 보면서 그곳을 찾아간 귀 얇아 속없이 찾아가는 사람도 필시 한 둘은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 방영물을 보았지만, 내 입맛에 그렇게 맛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지. 물론 지금은 더 발전했겠지만.
당시 주인 여사장님은 주방에서 연신 입이 함박만큼 벌어져 싱글벙글거리며 일손들을 지휘하고 계시는 걸 보았다. 혹시 이 카페에 들어오셔서 이 글을 보시는지는 모르겠다. 지리산은 섬진강 곁이니 사업상 이런 모니터도 필요하다.
“사장님! 그런 광고했으면 뭐라도, 짜배기라도 내놨어야죠.”
이런 말은 그냥 한번 해 본 소리지만. 이렇게 한 푼 안 받고 알아서 광고해 줄 때도 있었다. 이래저래 본의 아니게 덩달아 남을 위해 살아줄 때도 있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얼마 전에 친구 하나가 맛 집을 하나를 새로 개발해 놨다고 얼른 오라 해서 홍대입구 3대 천왕이라나 뭐라나 거길 물어물어 쫒아가 먹었더니 우리들 입맛은 아니었다.
“이런 집이 맛 집이라면 대한민국에 맛 집은 부지기수로 많을 거야.”
오죽하면 이리 푸념들 했으랴만 주인장이 들으면 물론 속상할 수 있겠지만별 수 있겠나 싶어진다. 누구 눈치 보느라 이런 말 못할 리는 없지만 음식 가치에 비해 올려 받아도 너무 올려 받는다며 나왔다. 방송 보고 자가용도 골목길에 속속 들어오고, 줄도 서서 있으니. 우리가 안 간다고 사업이 망하랴. 반찬도 두어 가진데 비쌌다.
세상 참 돌아가는 짓들이 왜들 이럴까? TV에 소개하려 내놓는 작자들 그 꿍꿍이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TV 방영 보고 이렇게 속없이 찾아다니는 그런 짓 좀 그만 둬야 할 텐데. 나부터 말이지. 허허허. 그저 웃자, 웃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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