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섬진강 물길 따라// 어림 반 푼 없는 상상력
이번 답사 구간은 경남 하동 평사리 일대다. 섬진강 남단이며, 전라도쪽이 아닌 경상도 쪽이다. 차량으로 내려온 우리는 악양면 동정호를 거쳐,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의 배경 무대인 평사리공원 은모래길을 들렀다가 ‘재첩잡는 선장집’ 식당에서 ‘재첩 모듬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하동포구를 거쳐 신월습지로 가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서울에서는 무려 4시간 가까이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 들러 쉬었다가 원거리로 승차해야 하니, 체력적으로도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다. 차량으로 당일 왕복 8시간 가까이 보내야 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동정리호 주변에 도착해 발을 내딛으니, 울긋불긋한 만국기들이 흩날려 이곳이 행사장임을 알려 주었다.
이곳 행사는 200만원의 상금을 걸고 하동군 농민회에서 주관하여 모집한 허수아비, 들녘아트, 바람개비, 깃발, 곤충모형으로 구성하여 축제장으로 꾸며 놓았다. 관내 읍면과 단체, 마을 등에서 협조받아 마련하였는데, 하동군 소재 13개 읍면과, 기관, 단체들은 10점 이상의 군집(群集) 1점 이상, 마을은 단독 3점 이상, 학교, 어린이집, 등에서 제출받아 콘테스트를 거쳐 설치되었던 것이다.
출품된 허수아비 행색들은 농촌 일에 바쁜 농민들보다는 중고생들의 학생 작품 같아 보였다. 그 구간은 중앙농로 입구-부부송-평사드레센터 입구까지 1.2Km에 걸쳐 설치해 놓았다 한다. 흰옷 입은 허수아비 둘이 앞뒤 서서 운동회 때 하는 그런 붉은색 큰 공만한 대봉시를 리어카에 싣고 임금님께 진상하러 가는 작품이 대상을 받았다 한다. 내 생각엔 쇠파이프 리어카로 임금님께 행차한다는 운반구보다는 차라리 가마에 올려 들고 가는 게 더 낫겠지 싶기도 했지만, 해학과 코믹을 생각하면 이게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행사든 여러 날을 두고 개최하는 이런 행사는 그 첫날이 가장 성대하여 인원도 많이 모여든다. 유관 단체와 마을별 어르신들이 나름대로 먹거리 등을 마련하여 참가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볼 것도 제법 풍성하거니와 풍악도 울리며 때에 따라선 엿장수들이 등장하는 품바도 제법 초대하여 흥미꺼리를 제공하여 지역 군민들 간의 소통의 자리가 되기 마련이다. 보통은 각급 기관장은 물론, 국회의원, 군의원 등이 참석하고, 언론매체를 통해 홍보하게 마련이다, 이곳 허수아비 축제는 이 지역 말고도 우리나라엔 여러 곳에서 같은 명칭으로 개최하고 있었다.
우리는 평사리 은모래길로 들어섰다. 섬진강 강가의 널따란 폭의 모래사장이 전개되어 마치 해수욕장에 온 듯싶다. 이곳에는 부모님들과 같이 온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져 모래성을 부지런히 쌓거나 물속에 들어가 재첩을 건지는데, 잡히지 않은 듯하다. 아주 평온한 한 낮의 다사로운 햇볕은 내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데, 젊은 부모님들과 그 아이들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저 아이들도 나처럼 성장하면 이 다음에 사색하러 또 다시 여길 방문하겠지.
걸어 들어가는데, 모래로 인해 신발이 모래더미에 묻히기도 했다. 몽근 모래가 햇볕에 반사되어 동해안 바닷가의 송지호 모래를 연상시킨다. 송지호 모래도 이처럼 몽근 모래더미다. 그곳은 바다고, 이곳은 강이라며 염도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셈하다가, 이 모래의 사용 용도가 번쩍 났다. 건축업자들이 탐할 것이다. 이걸 준설하여 아파트를 지은다면? 전에는 이북에서도 수입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런 상상력에 도달하고, 나도 별 수 없는 속물이라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도회지에서 살다 보니, 이런 경제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퍼가라고 이곳 군청이며, 주변 사람들이 가만 놔두겠냐 싶어졌다. 예전 같으면 준설허가를 내줬겠지만, 어림 반 푼 없는 상상이다. 내 상상력도 도시에서 살다 보니 이처럼 탁해졌나 싶어진다. 돈의 굴레에 잠식돼 잠시 속물이 되어 지다니.
자본주의의 병폐가 무섭다.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다. 오늘은 자연 찾아 나선 탐방이지 않나. 에고, 저 모래더미를 만드는 아이들이 내 머리 속을 까뒤집어본다면 하얀색 크레용으로 싹싹 지워버리고 싶어질 거다. 아니면, 저 애들이 쇠스랑을 들고 뛰쳐나올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상력까지 도달하고는, 이런 상상까지가 좋아 우리는 이처럼 여행을 떠나오는 게 아닐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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