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섬진강 물길 따라// 직업도 넥타이 유행이나 싶게
호화로운 자태의 낙엽이 뒹굴어 내렸다. 같이 걷던 여성들이 환호하며 덤벼들었다. 그런 낙엽을 잽싸게 줍는다. 저런 붉은 낙엽을 보고 있자니 어쩜 우리네 인생이듯 묘한 자극을 주었다. 봄날 무성한 나무잎이 가을이 되면 낙엽으로 떨어지듯, 우리들도 언젠가는 기필코 저 낙엽이 되어 가겠지. 저 낙엽이 붉어 아름답다 예찬하듯 우리들 낙엽도 사후에 누가 예찬해 주기나 할까?
한 분이 생각난다. 단 한 번의 인연. 딱 한 번의 만남인데도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면서도 잊혀 지지 않고 가끔 생각나는 사람. 오래 전에 만난 사람. 내 직장의 구내식당에 점심 때에 일부러 식사하러 찾아오시는 분이셨다. 안면에 윤기가 흘러, 눈부시게 귀티 나서 몇 번을 쳐다 본 어르신이다.
그 분은 항상 잠바도 아닌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출근하는 것처럼 입고 다니셨다. 양복차림이라도 어울리지 않은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그 분은 참 잘 어울리셨다. 누가 날마다 깨끗한 와이셔츠를 입혀 주실까도 못내 궁금해 지기도 했다. 며느리가 했다고 하면, 그 며느리도 벌써 50대는 지났을 터로 보이는 그런 나이 드신 어르신.
분주한 점심시간 식당에서, 평소에는 줄을 서며 먼 발치에서 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날따라 자리가 없어서인지 식사 중인 내 탁자 맞은편에 식판을 내려 놓으셨다.
“실례지만, 선생님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궁금하여 내가 여쭈니, 그 분이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아흔 둘이요.”
하시는데, 연세에 비해 목소리도 따글따글 힘이 넘쳐 보이셨다.
“실례지만, 젊었을 적엔 무얼하셨어요? 얼굴이 무척 좋아 보여서 말입니다.”
90이 넘으면 어르신들 얼굴에 검은 잡티가 생겨나고 또 얼굴 살집도 마르기 마련인데 그런 것은 전혀 없이 외양이 깨끗하고, 풍채 또한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외양이 인텔리로 보이는 품격을 지녔을 뿐 아니라, 노동자출신 같지 않고, 아마도 관료 출신으로나 보일 법한 중후한 풍채였다.
“저는 통영에서 수산업공판장에 종사했어요. 그런데, 여성들이 왜 오래 사는 지 알겠더라구요.”
출신 직업도 내 예상과는 달리 빗나가 의외였다. 하지만, 이 분은 여성들이 오래 사는 장수관에 대해 묻지도 않은 말씀까지 하셨다. 아마도 여성들 장수에 대해 생각하고 계셨던 듯 싶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여성들은 식사준비로 자주 움직이잖아요. 젓가락도 놓고, 걸레도 빨고, 마루도 닦고. 그런데, 남자들은 움직이질 않아요. 여성들이 몸을 움직이니까 오래 살 수밖에요. 하하.”
아. 이 분은 여성 장수에 대해 꽤나 깊이 고찰했던 듯 싶어졌다. 묻지도 않은 사례까지 불시에 열거해 놓으니 말이다.
이윽고 내가,
“자녀들은 다들 잘 되셨습니까?”
하니, 자신의 얘기를 들려 주셨다. 고교 때 큰 아들이 통영에서 공부를 잘 해서, 다른 곳으로 갈려던 걸 극구 말려 심사숙고하여 찾아낸 것이 전망 있을 거라 생각해, 명문 원자력학과에 자신이 극구 주장해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다니던 회사도 그 후 정책에 따라 없어져 그만 두고, 어찌어찌 지금은 부동산중개업을 한다고 끌끌 혀를 차셨다.
“그런 수재가 차라리 제가 가고 싶은 학과에 갔더라면 좋았을 걸.”
하시는데, 중개업이란 직업에 대해 비아냥 비슷해 하셨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곳에 가도록 내버려 둘 걸 그랬다고 무척 후회하셨다. 직업도 세월이 가면 넥타이 폭의 유행처럼 변한다. 어찌, 앞날을 예측할 수 있으리오만.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자식을 통해 나중에라도 계속 이뤄보려는 대리만족을 갖고 사나 보다. 엄마들도 자신이 고교 때 수재도 아니었으면서도 자신의 자녀들은 마치 수재인양 보채는 걸 자주 목격해 왔다.
지금은 벌써 작고했을 낯모른 미지의 이 분과 딱 한 번의 대화가 오갔을 뿐 인데 오늘 따라 떠오른다. 그 분은 그런 말씀들을 뒤로 두고 무대 뒤편 어디로 퇴장하셨다. 저 뒹구는 낙엽처럼 말이다. 나는 이 분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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