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섬진강 물길 따라// 하루내 엎드려 호미질해 보니
가을이 숨쉰다. 가을이 찾아온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가을을 향해 부단히 찾아온 것이다. 이 가을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줄기차게 이곳까지 공간여행해 온 것이다. 먼 훗날 이곳 가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 줄까. 나이테는 늘어나는데 가을 냄새와, 가을의 체온과, 그 표정까지 지금처럼 변함 없을까.
평사리 벌판에 누런 벼 이삭이 햇볕에 영글어 터질 듯 하다. 허수아비 무리 떼도 도처에 널려 있다. 새를 쫒기 위해, 깡통을 손에 쥔 그런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야말로 컬러다. 예전의 허수아비는 무명옷에 깡통 들고 새끼줄 흔들어대며 참새 조상들에게 호소했다지만.
요즘의 허수아비는 컬러로. 동복도 입고, 회사 유니폼까지 다양하게 입혀 있었다. 이북 동포들보다 더 멋진 차림이고 롱 치마까지 입고 있어도, 그 흔해빠진 미니스커트는 없어 보였다. 지금 거리엔 짧은 미니스커트와 반바지 차림이 활보하는데, 이곳은 그런 것은 쏙 뺐다. 출품이 안 됐단 말인지. 아니면, 하동군 농민회의 심의과정에서 일부러 빼버렸는지.
-축제여야 합니다. 로맨스는 주되, 선정적으로 흐르지는 말아야 합니다.
설마 어느 심의위원이 이랬을까만 미니 차림은 안 보여진다, 어디 확성기는? 그 흔해빠진 노래가락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런 행사엔 거개가 농악으로 구색을 맞추든가 판소리가 제격이다. 조상현씨나 안숙선씨의 걸쭉한 ‘쑥대머리’도 흘려주던데 말이다. 요즘은 한복이며 판소리가 점점 그 빛을 잃어가는 듯하다. 동호회 일부에서 우리 것은 지켜야 된다며 안타깝게 부르짖는다고는 해도, 짐짓 이를 찾는 인간들이 줄어지는 듯하다. 어디로 갔을까.
그렇다고 억지로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지 않겠나. 섬진강 물줄기를 동해바다로 틀어댈 수 없듯 말이지. 시대의 도도한 물길은 누구라도 막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호주관광에서 양탄자가 좋다고 꼬드기는 것과도 같다.
- 이거 한국에 가지고 가시면 돈 버는 거에요.
현지 고용된 한국인 점원은 그렇게 꼬드겨서 양제품을 사가라고 맞장구치기도 했다. 맞아요, 그 양탄자 너무 좋아요. 말은 그렇게 맞장구쳐도 그걸 구입해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에선 이미 구식이 되어 있다. 아파트 난방이 잘 돼 덥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난 도로변의 감나무가 익어가고 있었다. 예전에 그 흔해 빠진 떫은 똘감도 추석이 되면 익기 전이라도 된장 풀은 단지에 우려서 한 입 깨물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 떫은 감을 우려먹었다는 소릴 듣도 보도 못했다.
대봉감은 뭉텅이로 매달린 채 지나치는 우릴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외지인이라서, 감이라서 그럴까. 떫은 표정이다. 하기야 하루 내내 저 들판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홀로 서 있으니 이런 농촌에서 사람 구경이 어디 쉬울까 보냐. 그나마 몇 안 되는 농촌 애들은 크자마자 도시로, 공장으로 돈 벌러 떠나고 없으니 사람 구경이 어디 쉬울까. 고향 들판에서 자유롭게 커온 아이들은 고향을 등지고 있다. 언제 이런 곳에서 살았더냐 싶을 정도로 떠나면 돌아올 줄 모른다.
“얘야 서울에서 돈 많은 놈 하나 물어라. 이런 농촌에는 내려와 살지 마라. 하루내 엎디어서 호미질하느라, 내 허리 동강났다. 이 손등 봐라. 거북등 같지 않냐. ”
내 고향 어느 어미는 어느 날 내 앞에서 그랬다. 딸에게 구겨진 손등을 보여주며 그리 주문하던 걸 본 적이 있다. 너라도 이런 고생하지 마라. 나는 못했다만, 코딱지만한 아파트라도 가진 놈 있거들랑 앞뒤 재지 말고 냉큼 물어 행복하게 살거라.
그저, 이런 현수막 같은 것도 아니고, 길 옆에 대봉감축제라는 현수막만 고독하니 걸려 있다. 감이 익기도 전부터 사람들을 불러 모인 셈이다. 들판에 우리들은 옹기종기 모였는데, 아뿔싸 파는 물건도 찾기 어렵다. 들판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나마 논 둑에 하나 심어놓은 감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이곳도 대봉감이 나오는 곳인가. 난 악양면에서 이런 감과 곶감이 나오는 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섬진강 저편 전라도 땅, 영암 금정에서 대봉감이 나오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그곳은 사방이 산으로 막혀 연 평균 기온이 14도를 유지하며, 다른 지역보다 서리 오는 시기가 늦어 생육기간이 15일이나 더 길어 당도가 풍부하고, 토양, 기후 등 지형조건이 대봉감 생육에 적합한 천혜의 자연조건이라 들었다. 이곳도 대봉감 주산지라니? 그럼, 이곳도 금정처럼 자연조건이 금정과 유사한 모양이다.
데미샘 물줄기의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동으로 쭉 내려오니 마치 이국에 와 있는 듯 싶다. 경상도와 전라도. 억양인 사투리부터 확연히 다르다.
【계속】
선ㅇ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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